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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아니었으면 해

다니엘의 편지 (녤윙)



 


 까만 구두가 대리석을 밟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언제나 올곧던 걸음걸이는 소리가 탁해졌다. 아스라질 것만 같은 발자국은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더니 어느새 숨죽이며 멎어들었다. 유리창에 검은 인영이 비쳤다. 까만 정장을 입은 다니엘은 그 많은 유리창 중 한 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니엘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정장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망설이던 손은 봉투를 한 번 꽉 쥐더니 이내 유리창을 열었다. 하얀 봉투는 작은 액자 앞에 놓였다. 

 다니엘은 눈가를 누르며 간신히 발을 떼었다. 탁한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 지훈아. 다니엘이야. 네가 쓴 편지, 거짓말 안 하고 매일 한 번씩, 아니 수십 번씩 읽어. 읽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진짜 아파 죽을 거 같은데, 이걸 쓰면서 너는 얼마나 더 아팠을까 생각하면... 미어터질 것 같아.

있잖아, 너는 나한테 너를 마냥 추억으로만 남겨두고 평소처럼 살아가랬잖아. 나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어. 네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회사도 장례식 후에 바로 나가고, 사람들한테도 정말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혼자 밥도 먹어보고, 코미디 영화 보면서 영화 때문에 웃는 척도 하고, 너랑 같이 걷던 공원도 혼자 산책해보고, 집까지 걸어가 봤다?

근데, 너랑 함께 하던 일이라 즐거웠던 거였고, 너랑 함께 하던 이야기라 재밌던 거였고, 너랑 함께 보던 슬픈 영화가 더 재밌었고, 너랑 함께 걷던 풀밭이, 집앞 보도블럭이 대리석을 밟는 것보다 경쾌한 소리가 났어. 차라리 널 휠체어에라도 태우고 같이 걷던 때가 더... 훨씬 더 좋았어.

그런 내가 널 잊으라고? 너랑 함께 있던 시간을 전부 머릿속에만 남겨두고 행복하라고? 너 진짜 나쁘다. 내가 어떻게 너 없이 행복해. 네가 있어서 내가 있는 거였어. 네가 있어야 난 잠에서 깰 수 있고, 네가 있어야 난 웃을 수 있고, 네가 있어야 난 숨쉴 수 있어.

있잖아, 난 단 하루도 널 잊지 않을 거야. 너의 산소호흡기를 결국 의사선생님이 떼던 순간에,  정말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했어. 사실은 알고 있었어. 정말 마지막이라는 걸. 그제서야 네가 꼭 쥐고있던 편지가 떨어진 걸 보며 오열했던 그날의 감정들을 난 잊으라 해도 잊을 수가 없어.

정말 미안해. 네가 하라는 대로 꼭 하고 싶었는데, 난 그렇게 못할 것 같아. 네가 너무 보고싶어. 정말 보고싶어. 그러니까 곧 만나러 갈게. 나 너무 미워하지는 마. 다시 보면,  달려와서 안아줄 거지? 정말 세게 안아줘. 사랑해.


너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작은 방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머리를 받쳐줄 베개 하나를 빼고서는 새까만 공기 뿐이었다. 그 속에서 다니엘은 잔잔하게,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도저히 잠을 자려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뒤척거리다 이내 바르게 누운 다니엘이 드디어 눈을 감았다. 쓴 냄새가 다니엘의 콧속을 비집고 들어와 가득 메웠다. 다니엘은 몽롱해지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려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다니엘은 어느 순간 너무나도 높은 계단의 처음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늘을 넘어서까지 치솟아있는 계단은 무엇에 맞닿아 있는지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눈이 부셔서 몇 걸음 앞조차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 밝은 빛을 뚫고, 작은 인영 하나가 급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느껴지는 인기척에 자신도 모르게 계단 위를 바라본 다니엘은 그 광활한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점점 다가와 다니엘을 가리는 그림자에 찌푸린 눈을 서서히 바로 뜰 때 쯤에, 가벼운 것이 다니엘을 감싸안았다.


 다니엘은 순간 숨이 막힌 줄 알았다. 분명, 얼마 되지 않는 무게임에도, 자신 위에 내려앉는 그 느낌이, 그 무게가 너무나도 익숙했음에, 다니엘은 정말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을 안는 그 포근함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정말 그리웠어서, 다니엘은 그도 모르게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다니엘!'

"...박지훈? 지훈이?"



 다니엘은 손을 올려 지훈을 감싸안으려 했다. 한 팔에 들어오는 얇은 몸통을 단숨에 끌어안으려 했는데, 힘껏 끌어안는 팔이 무색하게도 닿는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다시, 또 다시 팔을 휘저었다.



'다니엘, 보고싶었어.'

"나도. 내가 더. 정말이야. 나도 널 안아주고 싶은데, 왜... 왜 이러지?"

'...다니엘은 여기 있어서는 안 되니까.'

"왜. 대체 왜.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내가 어떨게 너를 다시 만났는데. 우리가 같이 있어야지, 어떻게 떨어져 있어. 응? 제발... 같이 올라가면 되는 거야?"


 쥐어지지 않는 작은 손을 꼭 쥐며 다니엘은 계단에 발을 올렸다. 지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다니엘은 바삐 다리를 움직여 계단을 올랐다. 눈이 너무 부셔서, 그래서 눈을 바로 뜰 수도 없는데도 다니엘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니엘을 작은 그림자가 다시 가로막았다. 다니엘은 가까스로 눈을 뜰 수 있었다.


'...이제 안 돼. 다니엘은 다시 가야 해.'

"아냐. 우리 이렇게 만났잖아. 저 위로만 가면 우리 다시 행복하게 같이 살 수 있는 거잖아."

'아니. 다니엘은 저 위로 못 가.'

"..."

'다니엘, 내가 해달라는 거 지금까지 항상 잘 들어줬잖아. 이번에도 내 말 좀 들어줘.'

"..."

'다니엘은... 아직 저기에 남아서, 내가 하지 못한 것들도 다 이뤄줘. 우리는 늘 함께일 거야. 내가 옆에서 지켜볼테니까. 응?'

"...지훈아, 그래도..."

'스읍, 다니엘. 알겠지?'

"..."

'우리 다니엘. 한 번만 더 안아보자. 이리와.'


 다니엘을 등을 쓰다듬는 작은 손길에 왠지 다니엘은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 또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조금씩 정신을 잃어가려는 것 같았다. 다니엘은 정신을 놓고 싶지 않았다.


'다니엘. 지금 우린 마지막이 아니야. 그리고 다니엘도. 우린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것일 뿐이야. 그 날이 좀 멀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모두 하면서 기다리기로 하자. 그런 편지는 빼고. 알겠지?'


 그렇게 다니엘은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지훈을 붙잡으려 했지만 여전히 잡히지 않는 손은 오히려 다니엘를 떠미는 것만 같았다. 

 다니엘 발 아래에 있던 계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어딘지 모를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에 다니엘은 허공을 향해 팔다리를 휘저었다. 허우적거리며 바라본 지훈의 미소는 눈물을 조금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영원히 닫혀있을 것만 같던 눈꺼풀이 열렸다. 까만 눈으로 들어오는 하얀 빛에 그는 자그마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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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지